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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꽃 이미지가 지닌 영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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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그리는 이들은 저마다 그 이유를 견장처럼 달고 있다. 왜 꽃을 그리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꽃이란 소재, 사물의 선택에서 머물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 있다. 미술에 대한 의미와 기능, 자신의 그림 그리는 실존적이고 자의식적인 물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입장, 감각의 수준 등이 결합되어 결국 특정한 소재를 선택하게 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법론으로 그리게 한다.
아름다워서 혹은 오묘하고 신비로워서, 자연의 섭리와 이치, 본질을 깨우쳐주기에 그럴 것이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의 선물에 해당할 것이다. 신의 창조를 인간의 손으로 다시 한번 추체험하고 축복하는 경배적 차원의 그림그리기다. 자연은 분명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다. 그중에 꽃은 가장 아름답고 인간이 삶과 시선에 우선적으로 다가와 쉽게 머문다. 그것은 자연의 결정이고 모든 식물성의 발화다. 새삼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동물성의 인간을 마냥 순화시키거나 자신의 존재를 반성하게 하는 매력들이 있다. 그래서 더욱 끌린다. 광합성으로 자기 생을 완성하는 식물은 타자를 섭취해야 하는 동물성의 존재를 숙연하게 한다.
김미정의 꽃그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꽃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꽃을 표현해 본 것”(작가노트)이다. 이 문장에 작가의 그림세계, 작가의 입장, 미술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신의 창조와 관련된 믿음의 실천적인 형상화를 나름의 작가적 의무로 받아들였다. 자연이 그 가시적 대상이고 그 중에서 꽃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상정되었다. 꽃은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신의 창조와 관련된 의미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선물이고 축복이며 경이로움 그 자체다. 꽃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손으로, 몸과 마음으로 재현하는 일, 환생시키는 일은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일이고 신비로운 창조의 과정에 은연중 동참하는 일이다. 신과의 조우가 그 자리 어디선가 환영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다. 종교적 행위와 창조적 행위가 이렇게 단단하게, 갈등 없이 결합되는 경우를 스스로의 작업세계로 삼은 이들은 더없이 행복한 존재일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는 단지 자연의 미술적 재현으로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부여 받으면서 이동한다.
미술 자체의 가파르고 협소한 영역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한 현대미술 및 이미지가 더욱 과잉되고 현실이 모조리 이미지로 환원되면서 결국 인간의 내면세계가 상실되고 현실이 뭉개지고 이미지의 영성과 신비스러운 힘이 부정되어온 그간의 미술의 흐름에 비춰봤을 이런 그림은 어쩌면 새로운 종교미술 혹은 내면과 영성을 다시 호출하는 미술의 한 영역을 미련해줄 수 도 있을 것이다. 물론 꽃,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고 이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삼 동시대에 식물성을 소재로 해서, 이를 단초로 해서 작업을 풀어나가는 많은 작가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만나고 있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꽃을 선천적으로 좋아한다. 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꽃구경을 다녔고 이를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사진과 스케치로 봉인해오고 그런가하면 꽃과 간련된 박람회나 행사에도 다니다가 아예 직접 주말농장에서 꽃을 키우고 있다. 유채, 무꽃, 케일 꽃, 파 꽃, 치커리 꽃, 쑥갓 등을 키우면서 이를 매일 관찰하고 바라보았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꽃그림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다기하며 꽃들의 생태가 손에 잡힐 듯하다. 식물도감이나 단조로운 창백한 묘사의 기록적 차원과는 좀 떨어져있다.
장지 위에 분채로 이루어진 이 사실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꽃들을 바라보면 개별 꽃들의 특장과 생김새와 생태들이 감촉된다. 일반적으로 다루는 꽃들의 종류에서 조금은 다른 종류들이 다루어지는 것도 흥미로운데 이는 야생의 꽃들, 본인의 마음과 눈에 호소하면서 다가온 종류에 대한 선택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자주달개비, 개망초, 메발톱, 환련 등이 그런 예다. 이 꽃들은 그 존재가 화면 전면에 부각되는 구도로 그려졌다. 배경은 약간의 층차를 지닌 단색조로 마감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작가는 적막한 공간에 꽃의 존재를 수직으로 위치시키고 보는 이의 눈을 그 꽃의 육체에 집중시킨다. 배경처리는 꽃의 존재성을 더욱 배가하는데 기여함으로 다양한 방법론에 의해 구축된다. 한지를 구기고 색을 입히는가 하면 먹을 번지게 하는 기법, 질감처리를 얹혀놓은 것 등등 이런 저런 효과들이 동원되고 있음을 본다. 그러니까 전면에 위치한 꽃의 정치한 묘사와 심리와 분위기를 고양하고 배치시키는데 동원된 후경은 대부분 꽃의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키고 전체적인 분위기의 조화라는 차원에서 조율된 것이다. 배경처리를 회화적 효과, 기법의 극대화로 밀고나가기 보다는 주제가 되는 꽃의 삶, 생장과 관련된 것으로 연계시켜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작가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길러낸 꽃들을 관찰하고 완상한 체험, 경험과 결과를 화면 위에 공들여 올려놓았다. 마치 식물학자가 식물원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공부하듯이, 작가는 자신의 텃밭에서 꽃들을 키우면서 그 생장과정을, 결과물을 화면에 기록하듯이 그려놓았다. 매일 매일 성장일기를 쓰듯, 식물의 생명력과 과정을 다시 추체험하면서 그 궤적을 그림으로 따라가 본 것이다. 그것은 그림이자 식물의 성장일기이며 일종의 도감이자 생태기록에 근접한다. 나로서는 생장과정에 더욱 밀착한 소박하고 흥미로운 일기, 기록적 내용이 그림과 함께 결합되는 것이 작업으로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 기존의 자연을 다룬 그림 같은, 꽃을 다룬 일반적인 잘 그린 그림에 그치지 말고 또한 도감의 기록적 모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본인의 꽃과의 생활체험, 재배경험이 작업 자체로 부드럽고 편안하게 풀려나오는 지점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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